유형별 전시

문서

일본공사 대담서

문서 / 1885

1885년(고종 22) 6월 7일과 10월 16일에 日本代理公使 高平小五郞과 金允植이 나눈 對談을 옮겨 적은 것이다.

對談을 적은 종이를 토지대장에 개별 낱장으로 붙였다. 김윤식은 ‘主’로‚ 高平小五郞은 ‘客’으로 표현하였으며‚ 대담장소는 統理軍國事務衙門의 廳舍였다. 대담의 요지는 甲申政變이후 淸軍의 완전 철병과 公使館 보호를 위해 호위대 常駐를 주장하는 일본공사와 양국의 군대가 철수하면 조선군으로 각국 공사관을 보호하겠다는 김윤식의 대담내용‚ 華電局을 통해 청에서 차관을 도입하여 漢城에서 義州間 전신선을 가설하는 것에 관련하여 한성에서 부산간 가설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입장과 조정에서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무마하는 내용‚ 일본·중국·유럽제국 등의 평화로운 세력균형 속에서 조선의 중립적인 지위를 언급한 내용‚ 靑坡洞을 지나가던 일본인이 조선인의 공격으로 피살된 사건에 대한 해명 등이 적혀 있다. (김경록)

 

주미 한국공사관 직원명단

문서 / 1895

1895년 미 국무부에서 발행된 미국주재 외교관 명단으로 주미한국공사관 직원 명단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한응 열사 친필일지

문서 / 1905

이한응 열사의 친필일지이다. (자료제공 : 이민섭 교수)
이한응(1874(고종 11)~ 1905)은 조선 말기의 관료이자 우국지사이다. 주영 참사관 재직시 1904년 한일협약이 강제로 성립되자 각국에 주재하는 우리 공사들에게 한국 외교를 위하여 재외사절단이 공동 항쟁을 하도록 토의하였으며 영·일동맹의 부당함을 들어 영국 정부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영·일동맹이 강화되고 일본이 한국 정부의 주권을 강탈할 음모를 획책하자 이를 개탄하여 1905년 5월 12일 자결함으로 순국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한응 열사에 대한 고종황제 치제문

문서 / 1905

고종황제가 이한응 열사의 순국을 슬퍼하며 보낸 치제문으로 고인의 애국충정을 치하하고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내부협판(內部協辦)으로 추서하였다. (자료제공 : 이민섭 교수)

멕시코 일간지의 한국 이민관련 보도내용

문서 / 1905

한국 이민 1000명이 유카탄에 이주할 것이라는 내용의 멕시코 신문기사(1905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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